시집 · 전 100편
하늘이 입 모양을 빌려준 밤
훈민정음 서사시 · 청람 김왕식
작가의 말 ― 이 백 편의 숨을 건네며
이 시집은 오래전부터 쓰여 온 것을 뒤늦게 따라 적은 기록에 가깝다. 처음에는 문자를 쓰려 했으나, 곧 깨달았다. 문자는 쓰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훈민정음을 다시 바라보며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정교함이 아니라 따뜻함이었다.
쓰는 동안 자주 멈추었다. 한 글자를 떠올리는 데 하루가 걸린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알게 되었다. 문자는 빠르게 쓰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듣는 것임을. 이 시집을 쓰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적던 아이, 억울함을 종이에 남기던 백성. 그들의 작은 문장이 이 시집의 가장 큰 스승이었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한 번쯤은 조용히 소리를 내어 읽어 주었으면 한다. 그 순간, 이 시집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 백 편의 시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읽는 모든 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 들음의 연대기
세종은 그것을 발명한 이가 아니라 먼저 들은 사람이었다. 집현전의 학자들은 그것을 만든 이가 아니라 끝까지 들은 사람들이었다. 신미는 그것을 퍼뜨린 이가 아니라 길 위에서 다시 살게 한 사람이었다. 이 시집은 그 들음의 연대기다.
이 시집은 문자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문자는 언제 살아 있는가. 사람을 향할 때다. 그러므로 이 백 편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서도 계속 쓰이고 있는 현재의 문장이다.
구성
우주가 먼저 소리를 빚는 장면에서 시작해, 혀와 입술이 소리의 몸을 얻고, 임금의 밤과 학자의 떨림을 지나 스물여덟 글자가 태어나며, 해례가 문자에 영혼을 붙이고, 마침내 반포로 나라의 입이 열리기까지 ― 혼돈의 숨에서 오늘의 화면에 이르는 7부 100편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말·프롤로그·구성을 실었습니다. 훈민정음을 소리와 숨으로 다시 쓴 서사시, 전문은 시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