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기 · 청람서루가 띄우는 초대
당신이라는 문학을 기다립니다
Ⅰ.초대
― 향기가 바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꽃은 저 홀로 피어도 아름답지만, 향기는 바람을 만나야 멀리 갑니다.
한 편의 글도 그렇습니다.
서랍 속에 머무는 동안은 혼자 꾸는 꿈이지만, 사람의 마음에 닿는 순간 함께 꾸는 꿈이 됩니다.
청람서루가 오늘 당신께 이 편지를 띄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큰 이름을 가진 곳이 아닙니다.
인사동 골목,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와 기타 소리, 시 한 편이 낭송되는 저녁의 온기를 아끼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샘은 작아도 강을 이루고, 별은 작아도 밤을 밝히며, 씨앗은 작아도 숲을 기억합니다.
시를 짓는 사람, 소설을 매만지는 사람, 수필로 삶의 결을 쓰다듬는 사람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서로의 첫 독자가 되고 서로의 오랜 벗이 되어 왔습니다.
이제 그 문장들을 정성껏 엮어, 다달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보내는 첫 항해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좋은 사람은 한 편의 문학이라는 것을.
문학은 경쟁이 아니라 동행이라는 것을.
이곳에서는 높이를 재지 않습니다. 깊이를 묻습니다.
이름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마음을 먼저 읽습니다.
잘 쓰는 사람은 많습니다.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청람서루는 원고를 모으지 않습니다. 사람의 계절을 모읍니다.
문장을 읽기 전에 삶을 읽고, 표현을 보기 전에 마음의 온도를 만납니다.
당신을 모시고자 합니다.
오래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원고도 좋습니다.
오늘 새벽 문득 맺힌 한 줄도 좋습니다.
첫 문장은 언제나 떨립니다. 그 떨림이 생명의 증거입니다.
매화가 겨울을 다 견딘 뒤에야 향기를 허락하듯, 사람도 오래 침묵한 뒤에야 자기 문장을 얻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문장을 서둘러 재단하지 않겠습니다.
찬찬히 읽고, 오래 아끼고, 함께 가꾸겠습니다.
한 그루 나무가 아무리 곧아도 홀로는 숲이 되지 못합니다.
서로 다른 빛깔의 문장들이 어깨를 겯을 때, 비로소 새들이 깃드는 숲이 생기고, 지친 이가 쉬어 가는 그늘이 드리웁니다.
그리고 가만히 꿈꾸어 봅니다.
언젠가 당신의 한 줄이 국경과 언어를 건너, 다른 하늘 아래 낯선 이의 새벽을 여는 날을.
숲이 되어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라는 문학을 기다립니다.
Ⅱ.뜻
― 한 사람의 문장이 한 세계의 별이 될 때까지
우리가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이 숲의 가장자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학은 한 나라의 언어로 태어나지만, 끝내 한 나라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문장은 국적을 갖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고향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 하나로 이 길을 시작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새벽의 적막 속에서 눌러쓴 한 줄의 시가, 낯선 언어의 숨결을 입고 먼 대륙의 창가에 내려앉을 것입니다.
그곳의 누군가는 당신의 이름도, 당신이 살아온 계절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문득 오래 잊고 살았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린 날 뛰놀던 강가를 기억하며, 눈물 한 방울을 가슴에 품게 될 것입니다.
언어는 서로 다릅니다. 사람의 그리움은 하나입니다.
눈물의 온도와 기도의 깊이는 국경을 모릅니다.
문학이 위대한 까닭은 번역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청람서루는 문예지를 만드는 일을 꿈꾸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하나의 문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봄은 한국에서 피어나고, 가을은 다른 나라에서 익어 가지만, 사람의 사랑과 기다림, 상실과 희망은 계절처럼 서로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닮음을 읽는 공동체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학단체가 있고, 훌륭한 문예지도 적지 않으며, 번역 또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 하나가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인들이 하나의 뜰에 모여, 서로의 언어를 서로의 심장으로 번역하고, 한 권의 문예지를 함께 키워 가는 일.
국적은 달라도 한 권의 책에서는 모두가 한 사람의 이웃이 되는 일.
우리는 그 빈 하늘에 첫 별 하나를 띄우려 합니다.
청람서루가 세우려는 것은 조직이 아닙니다.
문학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다리입니다.
그 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나라와 나라를 잇고, 오늘과 내일을 잇고, 마침내 인간과 인간을 다시 만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길을 남기고 싶습니다.
등불은 제 발밑을 밝히려 켜는 것이 아닙니다.
길 위의 모든 걸음을 위하여 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박수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얻고 싶습니다.
문학은 경쟁의 꽃밭이 아니라, 함께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약속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상생(相生)입니다.
이 길은 아직 멉니다.
지금 우리의 손에는 완성된 지도가 없습니다.
다만 북극성을 잃지 않은 항해자의 마음 하나가 있습니다.
바다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첫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당신이 내미는 한 편의 시, 한 편의 수필, 한 편의 소설이 내일은 누군가의 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빛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기적을 믿습니다.
청람서루는 오늘도 노 하나를 비워 둡니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위하여.
아직 쓰이지 않은 당신의 문장을 위하여.
아직 세계가 읽지 못한, 당신이라는 문학을 위하여.
Ⅲ.채비
― 밝혀 둔 등불
이 뜻은 말 위에만 세워 둔 집이 아닙니다. 청람서루는 그 길을 이미 닦아 두었고, 지금도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글이 실릴 지면 문예 월간지가 곧 첫 호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당신의 글이 철마다 오를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글이 오르는 웹진 세계 곳곳에서 온 글을 이 지면 (cheonglamseoru.news)에 꾸준히 실어 갑니다. 서로 다른 하늘 아래에서 쓰인 문장들이, 이곳에서 먼저 만납니다.
값 없이 열리는 서가 누구나 값을 치르지 않고 읽는 열린 공공 전자도서관 (펍-엘리, www.pubeli.com)입니다. ‘책을 위한 유튜브’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청람에서 나오는 책은 모두 이 서가에 값 없이 오릅니다. 모든 이야기가 독자를 만나는 세상 ― 그것이 이 서가의 이름에 담긴 뜻입니다.
국경을 넘는 번역 글에 여러 언어의 옷을 지어 입혀, 다른 하늘 아래 독자에게 닿게 하는 일입니다. 그 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문인이든, 어느 언어의 독자든, 우리는 그 방향으로 걸음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한 구절의 걸음 좋은 글은 한 구절만으로도 사람을 붙듭니다. 한 구절이 게시글이 되고, 낭송과 자막을 입은 짧은 영상이 되어, 세상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갑니다.
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다만 함께 걸을 벗을 기다릴 뿐입니다. 부디 마음속에 오래 품어 온 문장이 있다면, 이 마당에 실어 주십시오. 그 문장이 어느 저녁, 낯선 언어의 창가에 등불처럼 놓이는 날까지 ― 이 길은 언제나 당신을 향해 열려 있겠습니다.
― 청람서루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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